최근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인 한 유조선 운영사는 주목할 만한 제안을 받았다. 수주 동안 미사일과 드론이 오가는 위험한 상황 속에 정박해 있던 이 선박은, 이란 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공해로 나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2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다만 조건은 선적 등록을 변경하고 파키스탄 국기를 게양하는 것이었다. 이는 민감한 협상 내용을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회사 임원의 증언이다.
▲ 파키스탄, ‘우회 통로’ 확보 시도
해당 제안은 파키스탄 정부를 통해 전달됐지만, 해당 기업은 이를 수용하지 못했다. 이란은 파키스탄 선박 20척의 해협 통과를 허용했으나, 실제로 해당 지역에 있는 파키스탄 국적 선박은 많지 않았다.
이에 파키스탄 정부는 글로벌 원자재 트레이더들에게 접근해, 일시적으로 파키스탄 국기를 달고 항해할 선박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파키스탄은 최대 200만 배럴을 운반할 수 있는 초대형 유조선(VLCC)까지 포함해 가능한 한 큰 선박을 확보하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외교적 노력을 통해 분쟁 완화 성과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 IRGC, 사실상 ‘해협 통행 관리자’ 역할
이번 사례는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당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운업계와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IRGC는 이미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로부터 사실상의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으며, 우호국 선박에는 혜택을 제공하는 반면 적대국 선박에는 공격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란 국가안보위원회 역시 해협 통행료 부과 법안을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비공식적 징수 체계가 점차 제도화되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 ‘비공식 통행 절차’…코드·위안화·암호화폐 활용
현재 형성되고 있는 시스템에 따르면, 선박 운영사는 IRGC와 연계된 중개업체를 통해 선박 정보, 화물 목록, 목적지, 승무원 명단, AIS 데이터 등을 제출해야 한다.
이후 IRGC 해군이 배경 조사를 실시해 미국, 이스라엘 등 적대국과의 연관 여부를 검토한다.
통과가 승인되면 통행료 협상이 시작되며, 국가별 등급(1~5)에 따라 조건이 달라진다. 유조선의 경우 기본 협상가는 배럴당 약 1달러 수준이며, 위안화 또는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는 사례가 많다.
통행료 납부 후에는 IRGC가 허가 코드와 항로를 제공하고, 선박은 지정된 국기를 게양한 뒤 무전으로 코드를 송신하며 해협을 통과한다. 이 과정에서 순찰정의 호위를 받는데, 업계에서는 이 구간을 ‘이란의 톨게이트’라고 부르고 있다.
▲ 국제법 논란…“합법성 불투명”
이란의 통행료 부과가 국제법적으로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크다. 일반적으로 연안국은 해안선으로부터 약 12해리 범위 내에서 선박을 검사할 권한이 있지만, 통행 자체에 비용을 부과하는 것은 명확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자위권 행사’를 근거로 들고 있지만, 국제법 관점에서는 정당성이 약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고 분석한다.
▲ 보험·제재 리스크까지…선박 운영사 ‘딜레마’
선박 운영사들은 통행료 지불 여부를 두고 복잡한 법적·재무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IRGC는 미국, EU, 영국의 제재 대상이기 때문에 거래 자체가 제재 위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보험료 급등과 실제 공격 위험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쿠웨이트 유조선이 드론 공격을 받아 화재가 발생하는 등 피해 사례도 보고됐다.
▲ 긴장 지속…“위협 유지가 체계 유지 조건”
전문가들은 이러한 ‘안전 통행 거래’가 오히려 긴장을 완화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란이 해협 통제력을 유지하려면, 상선에 대한 위협 능력을 지속적으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통행료 체계는 단순한 안전 보장 장치가 아니라, 군사적 긴장과 경제적 통제를 결합한 새로운 해상 질서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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