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해 SK하이닉스에 전례 없는 수준의 투자 제안을 쏟아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I 인프라 경쟁이 격화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한 첨단 메모리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이에 따라 고객사들이 단순 구매 계약을 넘어 생산라인 투자와 장비 구매 지원까지 제안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생산라인 직접 투자” 제안까지 등장
8일(현지 시각) 로이터 통신과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글로벌 IT 기업들은 최근 SK하이닉스에 메모리 전용 생산라인 투자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고객사는 특정 생산라인 구축 비용 일부를 부담하는 방식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메모리 업계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특히 제안 대상에는 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 클러스터에 건설 중인 대규모 신규 팹(Fab) 초기 라인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해당 공장이 차세대 D램 생산의 핵심 거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는 AI 데이터센터 확대와 생성형 AI 시장 급성장으로 인해 메모리 공급 부족이 단기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ASML 장비 구매 지원까지…공급 확보 총력전
고객사들의 제안은 단순 투자 수준을 넘어 첨단 장비 구매 지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일부 빅테크 기업들은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구매 비용 지원 방안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EUV 장비는 반도체 회로를 웨이퍼에 새기는 핵심 설비로, 대당 수천억 원에 달하는 초고가 장비다.
이는 AI 반도체 경쟁이 단순한 칩 확보 차원을 넘어 생산설비 확보 경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특히 HBM과 고성능 D램 공급 부족이 예상보다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공급망을 직접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 SK하이닉스 “현금 충분”
그러나 SK하이닉스는 고객사들의 적극적 제안에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현재 충분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어 외부 자금 지원 필요성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특정 고객사와의 과도한 장기 계약이 향후 가격 협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관계자는 “현재 가용 생산능력은 사실상 ‘제로’ 수준”이라며 “특정 고객사를 위해 별도로 배정할 여유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는 AI 메모리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 AI 붐이 바꾼 메모리 산업 구조
이번 현상은 전통적으로 경기 변동성이 컸던 메모리 산업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 메모리 시장은 공급 과잉과 가격 폭락이 반복되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생성형 AI 확산 이후 데이터센터와 AI 서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업계에서는 이번 상승 국면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실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최근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AI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생산능력 확대 속도가 시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 메타·MS 투자 확대…AI 인프라 경쟁 격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 확대도 공급 확보 경쟁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메타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공급망 전반에 걸쳐 적극적인 계약 체결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올해 자본지출 규모가 1,900억달러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며, 반도체 비용 상승이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알파벳(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에 본격 돌입하면서, 첨단 메모리 반도체는 AI 산업의 핵심 전략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 장기계약 확대 움직임…‘가격 밴드’ 방식 검토
메모리 업체들과 고객사들은 최근 다년 계약 체결 논의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연간 가격 상·하한선을 미리 설정하는 ‘가격 밴드(price band)’ 구조가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분기별 가격 협상을 최소화하고 공급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고객사가 계약금 형태로 전체 비용의 30~40%를 선지급하는 구조도 거론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장기 계약이 실제 시장 급변 상황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지, 그리고 가격 책정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여전히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 “AI 승자 선택 부담”…공급 배분도 딜레마
반도체 기업들이 가장 경계하는 부분은 특정 고객사 편중 논란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체들은 AI 경쟁에서 특정 기업 편에 섰다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현재 AI 시장은 오픈AI,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주요 기업 간 패권 경쟁이 극단적으로 치열한 상황이다.
반도체 공급업체 입장에서는 특정 기업에 과도한 물량을 배정할 경우 규제 리스크와 시장 불균형 논란에 직면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이번 공급 확보 경쟁은 단순한 메모리 수급 문제를 넘어 AI 시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축으로 메모리 반도체가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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