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환율 1,540원 돌파와 외인 7조 매물 폭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자본 유출 위기

윤근일 기자
환율 1,540원 돌파와 외인 7조 매물 폭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자본 유출 위기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1,540원을 돌파하고 외국인이 역대 두 번째 규모인 7조 원에 육박하는 주식을 매도하며 국내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중동의 군사적 충돌 고조와 미국의 추가 관세 발표가 위험 자산 회피 심리를 극대화하면서 코스피는 1.8% 이상 급락한 8,630선으로 밀려났다. 채권 금리마저 연 3.8%대로 치솟아 가계와 기업의 금융 부담이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기록적인 매도세와 환율의 가파른 상승이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야간 거래에서 장중 최고 1,540.3원을 기록하며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록했던 1,561.0원 이후 약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이는 지난 3월 기록한 전고점인 1,530.1원을 단숨에 갈아치운 것으로 원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외환 시장은 주간 거래 시작부터 13.6원 오른 1,530.0원으로 출발해 장중 변동성을 키우다 야간에 폭발적인 상승세를 나타냈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하루 만에 6조 9,880억 원어치의 주식을 쏟아내며 시장 붕괴를 주도했다. 이날의 순매도 규모는 중동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 2월 27일 기록된 7조 812억 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외국인은 지난달 7일 이후 19거래일 연속 '팔자' 행진을 이어가며 국내 증시에서의 자금 회수를 가속화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외국인의 이탈이 단순한 차익 실현을 넘어 한국 시장의 매력도 하락과 대외 리스크에 대한 공포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킨 핵심 원인이다. 미국과 이란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 소식에 더해 미국 정부의 추가 관세 발표가 투자 심리를 급격히 위축시켰다. 국제 유가는 사흘 연속 상승하며 배럴당 90달러대 후반까지 치솟았고 달러인덱스 역시 99대 중반을 기록하며 강달러 현상을 고착화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금리 인하 기대감은 사라지고 오히려 긴축 기조가 강화될 것이라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외국인의 전방위적인 매도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162.08포인트 급락한 8,639.41로 장을 마감했다. 지난달 28일 이후 이어오던 상승세가 4거래일 만에 꺾이며 시장의 취약성을 그대로 노출했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는 2.5% 하락하며 35만 원 선으로 밀려났고 SK하이닉스 역시 2.63% 하락한 220만 원대에 머물렀다. 개인과 기관이 각각 5조 125억 원, 1조 8,124억 원을 순매수하며 지수 하단을 지지하려 했으나 거대한 외인 매물을 받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채권 시장에서도 금리가 급등하며 자본 조달 비용 상승에 대한 경고등이 일제히 켜졌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8.5bp 오른 연 3.858%를 기록하며 2023년 11월 이후 약 2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국고채 금리의 상승은 시중 금리 인상을 촉발해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금융권에서는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가계 부채 부실화와 기업 부도 위험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 역시 위험 회피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비트코인 가격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국내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전날보다 0.31% 내린 9,473만 6,000원에 거래되며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반영했다. 다만 주식 시장에서 소외됐던 코스닥 지수는 2.31% 오르며 6거래일 만에 반등에 성공해 대형주 중심의 하락세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코스피의 급락 속에서 일부 저가 매수세가 코스닥 중소형주로 유입된 기술적 반등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복합 위기 상황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보수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국내 금융시장이 통제 불능의 변동성에 노출됐다"며 "환율 1,540원 선 안착 여부가 향후 시장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공포 심리가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신중론을 제기하지만 자본 유출 속도가 워낙 가팔라 낙관론은 힘을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향후 금융당국의 시장 안정화 조치와 중동 사태의 전개 양상이 시장 복구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환율의 추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구두 개입과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으나 글로벌 달러 강세 흐름을 막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기업들은 고환율과 고금리에 대비한 비상 경영 체제를 검토해야 하며 개인 투자자들은 무리한 레버리지 투자를 지양해야 한다. 대외 변수가 주도하는 이번 장세는 당분간 높은 변동성을 유지하며 한국 경제 전반에 무거운 하방 압력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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