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애플 승부수, 챗봇 '시리' 개편에 달렸다

장선희 기자

애플이 다음 주 연례 세계개발자회의(WWDC)를 통해 대대적인 인공지능(AI) 전략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시장의 관심은 새로운 시리(Siri)가 애플의 AI 경쟁력 회복을 이끌 수 있을지에 집중되고 있다.

한때 음성비서 시장을 개척했던 시리는 현재 시장에서 가장 뒤처진 챗봇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이용자들이 알람 설정이나 타이머 기능 정도에만 활용할 정도로 기능적 한계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플은 이번 개편을 통해 시리를 챗GPT와 유사한 수준의 생성형 AI 비서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이다.

▲ 구글 기술 기반의 ‘뉴 시리’ 공개 임박

4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새롭게 선보일 시리는 구글의 AI 모델인 제미니(Gemini)를 기반 기술로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차세대 시리는 사용자의 과거 질문을 기억하고 기기 내 데이터를 활용해 보다 개인화된 답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챗GPT나 클로드(Claude)와 유사한 형태의 독립형 시리 앱과 유료 서비스 모델도 함께 출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단순한 음성비서 업그레이드를 넘어 애플이 생성형 AI 시대의 주도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 뒤처졌지만 가장 강력한 플랫폼 보유한 애플

흥미로운 점은 애플이 AI 경쟁에서는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시장 지배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 시절 애플 리테일 부문을 이끌었던 론 존슨 전 부사장은 "애플이 결국 AI 경쟁의 승자가 될 것"이라며 "사람들이 AI를 사용하는 주요 기기는 스마트폰이며, 애플은 올바른 파트너들과 협력해 차별화된 AI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애플은 전 세계 수십억 대의 아이폰과 iOS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AI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플랫폼이라는 의미다.

▲ AI 시대의 새로운 통행료 사업 가능성

애플은 이미 앱스토어와 사파리 검색 기본 설정 계약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더욱 똑똑해진 시리가 등장할 경우 애플이 AI 시대의 새로운 '관문 사업자(Gatekeeper)'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는 앱들이 사용자의 다운로드와 이용 시간을 놓고 경쟁하지만, 미래에는 AI 에이전트가 어떤 서비스를 호출할지를 두고 경쟁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버가 사용자의 이동 요청을 시리를 통해 받기 원한다면 애플에 일정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애플
애플(Photo : [AP/연합뉴스 제공])

▲ 스마트폰이 개인 비서로 진화하는 시대

생성형 AI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정보 검색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향후 스마트폰이 사용자의 일정과 취향, 위치 정보, 결제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개인 비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한다.

스마트폰은 사용자의 일정표와 음식 알레르기 정보를 바탕으로 식당 예약을 대신 진행하고, 집 주소와 결제 정보를 활용해 차량 호출 서비스를 자동으로 실행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앱의 역할은 축소되고, AI 에이전트가 사용자 대신 각종 온라인 서비스를 직접 연결하는 형태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 아이폰이 가진 최대 무기,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

애플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은 이미 수많은 사용자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폰은 일정, 연락처, 위치, 사진, 결제 정보 등 개인 생활 전반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AI 모델 개발 기업들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더라도 소비자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결국 이러한 데이터를 가진 플랫폼 사업자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시장의 판단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최근 투자 보고서를 통해 애플이 미래 AI 서비스 시장의 핵심 플랫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오픈AI도 애플 의존도 줄이기 시도

오픈AI 역시 이러한 구조를 인식하고 있다.

회사는 애플의 전설적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와 협력해 자체 AI 기기 개발에 나섰으며, 지난해에는 AI 앱 생태계 구축 전략도 공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앱 전략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아이폰 사용자를 대규모로 이동시킬 수 있는 독자 기기를 단기간 내 선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 가장 큰 위험은 여전히 ‘시리’

문제는 애플이 지금까지 시리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반복적으로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애플은 2년 전에도 시리가 메시지와 앱을 이해하고 화면 정보를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실제 기능 구현에는 실패했다. 결국 관련 기능 미제공을 둘러싼 집단소송까지 합의해야 했다.

투자은행 모펫네이선슨의 크레이그 모펫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상상 속의 AI 역량을 실제 소비자가 사용하는 서비스로 전환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 개인정보 보호 철학도 AI 개발에는 부담

애플의 강점으로 평가받는 개인정보 보호 정책도 역설적으로 AI 개발에는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정책은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엔지니어들이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해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어려움을 준다.

경쟁사들이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모델을 고도화하는 동안 애플은 상대적으로 제한된 환경에서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 메모리 확보 경쟁도 새로운 과제

하드웨어 측면에서도 도전 과제가 존재한다.

향후 AI 기능이 고도화될수록 아이폰은 클라우드를 거치지 않고 기기 내부에서 AI를 실행하는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용량 메모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엔비디아 등 AI 반도체 기업들이 메모리 공급을 대거 확보하면서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애플 역시 공급망 부담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애플은 지난해 시리 개발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물어 AI 부문 책임자를 교체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WWDC가 단순한 제품 발표 행사가 아니라 애플의 AI 경쟁력을 검증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애플이 보유한 막강한 생태계와 사용자 기반도 시리가 충분한 수준의 AI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16년 전 시리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 목표였던 ‘사용자를 대신해 일을 처리하는 진정한 AI 비서’가 이번에는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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