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북한 체제 존중과 평화공존을 핵심으로 하는 첫 번째 통일백서를 발간하며 대북 정책 기조의 전면적인 전환을 공식화했다. 이번 백서에서 '평화' 언급은 이전 정부 대비 약 7배 급증한 반면 '자유'와 '북한인권' 서술은 사실상 고사 수준으로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유화적 기조에도 불구하고 남북 왕래 인원과 교역액은 수년째 전무한 상태를 기록하며 정책 지향점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냈다.
정부가 북한과의 적대적 대결 종식과 평화공존 추진 의지를 담은 '2026 통일백서'를 발간하며 지난 정부의 대북 압박 기조를 완전히 뒤집었다. 통일부가 18일 공개한 백서의 부제는 '2025 한반도 평화공존의 기록들'로, 매년 발간되는 통일백서에 특정 부제가 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출범 당시 단절 상태였던 남북관계를 평화공존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적 지향점을 명확히 투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번 백서는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던 기존의 '담대한 구상'이나 '8·15 통일 독트린' 대신 이른바 대북 3원칙을 전면에 배치했다. 정부는 북한 체제를 존중하고,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으며, 적대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3원칙을 바탕으로 한반도 공동성장을 추구한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정책 추진의 기반을 강화하고 평화교류협력과 남북대화를 복원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실행 과제를 제시했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기조의 변화는 백서 내 용어 사용 빈도에서 극명한 수치 차이로 증명되었다. 본문 내 '평화' 또는 '평화공존'이라는 단어의 노출 횟수는 작년 29회에서 올해 196회로 약 6.7배 폭증했으며, '회담'과 '대화' 역시 16회에서 58회로 크게 늘었다. 반면 이전 정부가 강조했던 보편적 가치인 '자유'는 43회에서 3회로 급감하며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으며, 정책의 핵심 축이었던 '북한인권' 언급도 156회에서 26회로 80퍼센트 이상 축소되었다.
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도 공세적 비판에서 협력적 관리로 전환되면서 관련 항목의 비중이 대폭 하향 조정되었다. 작년 백서에서 독립된 장으로 다뤄졌던 '북한인권과 인도적 문제'는 '남북인권협력 추진'이라는 하위 절로 축소 편입되는 변화를 겪었다. 또한 부록에 실렸던 유엔 북한인권결의 채택 현황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현황 등 북한에 비판적인 지표들은 이번 백서에서 일제히 삭제되었다.
탈북민을 지칭하는 공식 용어는 '북한이탈주민'에서 '북향민'으로 대체되었으며 관련 서술의 중요도 또한 낮아졌다. 작년 백서에서 203회 언급되었던 북한이탈주민 용어는 올해 북향민으로 바뀌며 단 10회만 사용되는 데 그쳤다. 주요 통계 목록에서도 국군포로, 납북자, 억류자 현황과 이산가족 현황의 배치 순서가 뒤로 밀리는 등 피해자 중심의 서술 방식이 상당 부분 약화된 모습을 보였다.
정부의 이러한 화해와 협력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남북관계의 지표는 여전히 역대 최악의 단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백서에 수록된 남북관계 주요 통계에 따르면 남북 간 인적 왕래는 5년 연속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남북 교역액 또한 3년 연속 전무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1995년 이후 지속되었던 대북 인도적 협력 지원액 역시 2024년에 이어 2년 연속 '0'원을 기록하며 실질적인 교류의 맥이 끊겼음을 시사했다.
남북 간 공식 소통 창구인 연락채널 또한 2023년 4월 북한의 일방적 차단 이후 현재까지 복구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이산가족 교류 분야에서도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성과는 없었으며, 민간 중개인의 도움을 받은 단 1건의 생사 확인만이 통계에 반영되었다. 이는 정부가 내세우는 평화공존 정책이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국내용 선언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번 백서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위해 대북 전단 및 확성기 중단 등 선제적 조치를 단행한 정부의 노력을 기록한 것"이라며 "향후 남북기본협정 체결을 통해 평화공존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밝혔다. " " 이와 같은 정부의 입장은 법치와 제도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관리하겠다는 효율성 중심의 사고를 반영하고 있으나, 북한의 실질적 태도 변화 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자유'와 '인권'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백서에서 지우는 것이 국가 안보와 정체성 확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특히 대북 제재 현황과 인권 결의 관련 자료를 삭제한 것은 국제사회와의 공조 체계를 약화시키고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비판이다. 기계적 중립성을 고려하더라도 정책의 유연성이 국가의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보수적 시각이 존재한다.
정부는 이번 백서를 국회와 공공도서관, 연구기관 등에 배포하고 누리집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정책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9·19 군사합의 복원과 평화공존 정책이 실제 남북 간의 물리적 긴장을 완화하고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지는 향후 북한의 대응에 달려 있다. 단절된 연락망 복구와 인적 교류 재개라는 실질적인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용어 빈도의 변화만으로는 한반도의 엄중한 현실을 타개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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