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노병 김영창 옹이 75년 만에 6·25전쟁 가칠봉 전투 현장인 강원 양구 대우산을 다시 밟으며, 그가 피 흘려 지킨 전선에서 당시의 치열했던 순간들을 회고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육군 21사단은 5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강원 양구 대우산에서 가칠봉 전투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영창 옹을 비롯해 윤기선 21사단장과 장병들이 참석하여 노병을 뜨겁게 영접했다.
김 옹은 1951년 5월 입대 후 국군 5사단 35연대 2대대 3중대 3소대 소속으로 가칠봉에 투입됐다. 그는 당시의 참혹했던 전투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김 옹은 「1개 소대 32명 중 첫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단 4명뿐이었다」고 회고하며, M1 소총 한 자루와 수류탄 5발로 북한군 지하 벙커 무력화 임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정득기 대대장은 김 옹을 「가칠봉 전투의 살아있는 전설인 김영창 옹을 모신 것은 부대 모든 장병에게 무한한 영광」이라고 칭하며 깊은 존경심을 표했다.
가칠봉 전투는 1951년 8월, 전략적 요충지인 가칠봉 고지(해발 1242m)와 펀치볼 서측 고지인 대우산 일대, 그리고 1210m 무명고지(김일성 고지)를 두고 국군 5사단(35연대, 27연대 등)과 북한군 3개 사단이 맞붙어 치열한 공방을 벌인 격전지였다. 수많은 장병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이곳은 현재 대한민국 안보의 최전선이 됐다.
이날 행사에서 후배 장병들은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는 헌시를 낭독하며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할 것을 다짐했다. 정득기 대대장은 「무적 백두산 부대」로서 조국 수호의 최전선에서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행사는 헌화를 통해 가칠봉 전투에서 산화한 호국 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김영창 옹의 용기와 헌신은 21사단 장병들에게 강력한 안보 의식과 최전방 수호의 의지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의 희생으로 지켜낸 자유와 평화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굳건히 빛나고 있다.



![[금융진단] 미 증시, 지정학 완화·빅테크 반등에 상승](https://images.jkn.co.kr/data/images/full/98/28/982892.jpg?aspect_ratio=288:168&crop_gravity=northwest&width=2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