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4일(현지시간), 이란 여성의 삶과 현대사를 『페르세폴리스』에 담아내며 자유를 향한 뜨거운 목소리를 냈던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가 56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그는 프랑스 최고 훈장마저 거부했던 강직한 원칙을 세상에 남기며 떠난 후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사트라피는 지난해 4월(2025년 4월) 사랑하는 남편 마티아스 리파를 먼저 떠나보낸 지 불과 1년여 만에 슬픔 속에서 타계해, 주변에 더 큰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녀의 마지막 순간은 프랑스 남부 생트로페에서 찾아왔다. 1994년 이란을 떠나 프랑스로 이주한 뒤 2006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녀의 삶은 이란과 프랑스 양국 문화의 교차점에서 빛났으며,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대표작 『페르세폴리스』는 유년 시절부터 이란 혁명, 그리고 유럽 망명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통해 이란 여성의 고난과 현대사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내 전 세계적인 공감과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2007년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예술가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바느질 수다』와 같은 다른 작품들 또한 이란 여성들의 일상 속 섬세한 감정선과 내면의 깊이를 통찰력 있게 담아내며 독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울림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사트라피의 강직한 예술가 정신과 흔들림 없는 소신은 프랑스 정부의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기사장' 수여를 거부했던 충격적인 일화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2024년 7월, 프랑스 정부는 그녀의 문화적 공로를 인정하며 기사장 수상자로 선정했으나, 그녀는 이듬해인 2025년 1월, 이 영광스러운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당시 그녀는 프랑스의 위선적인 이란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프랑스의 이란에 대한 위선적인 태도를 무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이란인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공허한 명예가 아닌 「구체적인 행동」이라고 일침을 가하며 자신의 신념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이 이토록 강하게 비판했던 프랑스 정치권조차 그녀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는 점은 사트라피가 남긴 영향력의 크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 엘리제궁은 공식 성명을 통해 사트라피를 향해 「프랑스 문화계의 거물이자 자유를 사랑했던 예술가」였다고 추모하며 그녀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에마뉘엘 그레구아르 파리 시장 또한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녀를 기리며 애도를 표했으며, 프랑스 녹색당 대표 마린 통들리에도 그녀의 죽음을 '깊은 슬픔'이라 표현했다. 이는 그녀가 단순히 예술적 성취를 넘어 프랑스 사회와 정치권 전반에 걸쳐 미친 막대한 영향력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마르잔 사트라피는 단순히 작품 활동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가를 넘어,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 최고 영예마저 마다했던 진정한 행동가였다. 그녀의 삶과 예술, 그리고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자유'를 향한 외침은 이란과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구체적인 행동'의 중요성과 '진실한 자유'에 대한 영감을 계속해서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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