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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권 배제하고 명분만 세운 중국의 의전술 트럼프 영접에 한정 부주석 내세운 시진핑의 포석

재경 외신부 기자
실권 배제하고 명분만 세운 중국의 의전술 트럼프 영접에 한정 부주석 내세운 시진핑의 포석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베이징 도착 영접에 실권이 없는 한정 국가부주석을 내보내며 상징성과 실질을 분리하는 고도의 외교 전술을 구사했다. 이는 의전 서열은 높이되 실제 정책 결정권이 없는 인사를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는 동시에 중국의 실리를 챙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중국이 이번 영접을 통해 경제적 갈등 고조를 막기 위한 시간 벌기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중국 지도부가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한정 국가부주석을 파견한 것은 철저히 계산된 의전 정치의 결과물이다. 한 부주석은 국가부주석이라는 직함 덕분에 대외적인 의전 서열은 매우 높지만, 실제 중국 공산당 내 권력 구조에서는 이미 핵심에서 물러난 인물이다. 그는 2022년 제20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직을 내려놓으며 중앙위원회에서도 제외된 상태로 사실상의 반은퇴 가도를 걷고 있다.

중국이 실권이 없는 고위직 인사를 영접객으로 내세운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을 공략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화려한 행사와 높은 지위의 예우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형식적인 존중을 표함으로써 외교적 마찰의 임계점을 낮추려 시도했다. 이는 미국 측에 명분을 내주는 척하면서 실제 협상에서는 중국의 핵심 이익을 방어하려는 실리적 판단에 근거한다.

과거 미국 대통령들의 방중 사례와 비교하면 이번 영접의 미묘한 차이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방중 당시에는 실권자였던 양제츠 정치국원 겸 외교 담당 국무위원이 공항에 직접 나갔다. 당시 중국 관영 언론들은 중량급 인사의 영접을 통해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이번에는 서열은 높지만 영향력은 낮은 인물을 선택해 대조를 이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도 중국의 전략적 유연성은 확인된다. 임기 첫해인 2009년에는 차기 최고지도자로 내정됐던 시진핑 당시 부주석이 직접 영접에 나서며 극진한 예우를 갖췄다. 반면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강화되던 2014년에는 정치국원조차 아니었던 왕이 외교부장이 영접을 맡으며 냉랭해진 기류를 의전에 반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의전의 변화가 더욱 도전적으로 변모한 중국의 대미 자신감을 반영한다고 평가한다. 에번 메데이로스 조지타운대 교수는 "중국 외교에서 의전은 곧 본질이며 도착 환영 행사는 중국이 상대에 대한 존중의 수준을 결정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이번 영접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도 권력의 실세는 협상 테이블을 위해 아껴두는 방식을 취했다.

줄리언 거위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부주석이라는 직함이 지위를 중시하는 미국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줄 것임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이번 정상회담 내내 중국이 상징과 실질을 어떻게 맞바꾸려 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적 압박에 맞서 의전이라는 카드로 심리적 완충지대를 형성하려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 부주석의 영접이 중국이 미국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보다 격상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을 제기한다. 한 부주석의 의전 서열이 2024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영접했던 선이친 국무위원보다 높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는 중국이 러시아보다 미국과의 관계 관리에 더 큰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방증일 뿐, 실질적인 권력 이양이나 정책적 양보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시진핑 주석은 한정 부주석이라는 카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고 수준의 예우'라는 껍데기를 제공하고 알맹이인 실질적 권력은 철저히 통제했다. 이러한 방식은 향후 전개될 미중 간의 무역 및 안보 협상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강력한 신호로 해석된다. 중국은 의전 게임의 승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를 둔화시키고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협상 시간을 벌어들일 전망이다.

향후 미중 관계는 화려한 의전 뒤에 숨겨진 치열한 수싸움의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이러한 '의전 함정'을 인지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압박할지가 관건이다. 중국은 당분간 한 부주석과 같은 의례적 인물들을 앞세워 대외적인 긴장을 완화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공급망 재편과 기술 자립을 가속화하며 장기전에 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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