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재점화와 고금리·고환율 압박에 1%대 후반의 급락세를 보이며 8,640선으로 밀려났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19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기록하며 시장을 강하게 압박했으며, 원·달러 환율은 2개월 만에 1,530원 선을 돌파하며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반도체주들이 일제히 하락한 가운데 대외 악재가 겹치며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는 모습이다.
국내 증시의 중추인 코스피 지수가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와 글로벌 긴축 우려라는 이중고를 맞으며 가파른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160.91포인트(1.83%) 내린 8,640.58을 기록하며 지난달 28일 이후 4거래일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장 초반부터 2% 넘게 하락하며 출발한 지수는 직전 거래일 사상 처음으로 8,900선을 돌파했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채 차익 실현과 대외 변수에 무너졌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전날보다 13.6원 급등한 1,530.0원에 거래를 시작하며 외국인 자금 유출을 부채질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는 역대급 기록을 갈아치우며 시장의 하방 압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만 1조 8,509억 원을 순매도하며 지난달 7일부터 이날까지 19거래일 연속 '팔자' 행진을 이어갔다. 이는 국내 증시 역사상 10번째로 긴 순매도 기록이자,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 30거래일 연속 매도세를 보인 이후 6년 만에 최장 기록이다. 개인과 기관이 각각 1조 4,864억 원과 3,052억 원 규모를 순매수하며 지수 방어에 나섰으나 거센 외국인의 매도 물량을 받아내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 소식은 안전 자산 선호 심리를 자극하며 국제 금융 시장을 뒤흔들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자국 유조선 피격에 대한 보복으로 쿠웨이트와 바레인 내 미군 기지를 공격했다고 밝히면서 전면전 확산 우려가 커졌다. 이러한 지정학적 긴장은 즉각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을 배럴당 96.02달러까지 끌어올렸다. 에너지 비용 상승은 인플레이션 압박을 가중시켜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을 꺾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경제 지표의 견조함이 오히려 긴축 장기화 우려를 낳으며 채권 금리를 밀어 올린 점도 증시에는 악재다. 미 고용정보업체 ADP가 발표한 5월 민간기업 고용은 전월 대비 12만 2,000명 증가하며 작년 1월 이후 최대 폭의 상승세를 나타냈다. 고용 시장의 열기가 식지 않으면서 뉴욕 증시 마감 무렵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장중 심리적 저항선인 4.5%를 넘나드는 등 강세를 보였다. 금리 상승은 기술주 중심의 성장주에 밸류에이션 부담을 주며 투자자들의 매도 버튼을 누르게 만들었다.
글로벌 반도체 업황에 대한 경계심도 국내 대장주들의 주가를 끌어내리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기대주인 브로드컴이 실적 발표 후 시간 외 거래에서 13% 급락하며 시장에 충격을 던졌다. 다음 분기 매출 전망이 시장의 높은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엔비디아와 TSMC 등 주요 기술주들도 동반 하락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2.77% 하락하며 35만 원대로 밀려났고, SK하이닉스 역시 3.90% 급락하며 220만 원 선을 위협받고 있다.
그동안 증시를 견인했던 이른바 '젠슨 황 효과'가 소멸하며 관련 수혜주들도 가파른 조정 국면에 진입했다. 엔비디아 CEO의 방한 기대감으로 급등했던 LG전자가 13.12% 폭락했으며, 현대차와 네이버도 각각 4.80%, 8.56% 하락하며 차익 실현 매물에 시달렸다. 시가총액 상위권 종목 중 삼성전기, LG에너지솔루션 등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며 업종 전반에 걸친 투매 양상이 나타났다. 반면 삼성물산과 미래에셋증권 등 일부 가치주와 금융주만이 소폭 상승하며 하락장에서 선전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대외 불확실성에 따른 변동성 장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키움증권 한지영 연구원은 "국내 증시는 미국 증시 조정과 브로드컴의 주가 하락, 그리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의 1,530원대 재진입이라는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대외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장중 변동성이 확대되는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환율의 추가 상승 여부가 향후 지수 향방을 결정지을 변수로 꼽힌다.
다만 유가 상승과 금리 급등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코스닥 시장은 외국인 매기가 유입되며 차별화된 흐름을 보였다. 코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23.42포인트(2.28%) 오른 1,049.45를 기록하며 코스피와는 상반된 행보를 나타냈다.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 등 이차전지 관련주들이 2~4%대 강세를 보였고, 알테오젠과 주성엔지니어링 등 제약·장비주들도 상승 대열에 합류했다. 이는 유가 상승의 직접적 타격을 받는 대형주 위주의 코스피와 달리 성장 모멘텀이 살아있는 개별 종목 장세가 펼쳐진 결과로 풀이된다.
향후 증시는 중동 사태의 전개 양상과 미국의 추가 고용 지표 발표에 따라 분수령을 맞이할 전망이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위협할 경우 국내 수입 물가 상승과 경상수지 악화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투자자들은 환율 1,530원 선의 안착 여부를 주시하며 보수적인 자산 배분 전략을 취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외국인의 19거래일 연속 순매도가 멈추는 지점이 국내 증시의 단기 저점이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수급 변화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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