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발표했으나 중국은 비핵화 용어를 배제한 채 정책의 연속성만을 강조하며 온도 차를 드러냈다. 이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조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시사하며 중국이 향후 한반도 문제에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외교적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 문제를 두고 서로 엇갈린 해석을 내놓으며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북한 비핵화라는 공유된 목표를 확인했다고 명시했으나 중국 외교부는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과 정책이 연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놓았다.
중국 외교부의 이러한 태도는 미국 측이 발표한 팩트시트의 내용을 정면으로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비핵화라는 핵심 용어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띠고 있다. 궈 대변인은 관련국이 한반도 문제의 핵심과 근원을 직시하고 정치적 해결이라는 큰 방향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의 핵 개발 원인이 미국의 위협에 있다는 북측의 논리를 우회적으로 옹호한 것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이 비핵화라는 표현을 생략한 것은 북한과의 전략적 관계를 고려한 고도의 외교적 계산이 깔린 행보라고 분석했다.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을 대미 견제의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 비핵화 압박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평가다.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중국이 과거의 북핵 불용 원칙에서 후퇴하여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묵인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국은 최근 수년간 각종 국제 회의와 공식 문서에서 비핵화라는 단어를 삭제하거나 언급을 자제하는 경향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2024년 서울에서 열린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 당시에도 중국은 2019년과 달리 한반도 비핵화를 공동 목표로 명시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지난해 발간된 군비 통제 백서에서도 2005년판에 존재했던 비핵화 관련 서술이 빠진 점은 중국의 정책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한반도 문제의 처방전으로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동시에 추진하는 쌍궤병진 원칙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중국은 미국이 당사국의 합리적 우려를 중시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합리적 우려는 사실상 북한의 체제 보장과 제재 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한미 양국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동시에 안보 분야에서도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2028년까지 매년 25조 원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하기로 합의한 점을 주요 성과로 내세웠다. 하지만 경제적 밀착과는 별개로 한반도 안보 문제에서 중국의 실질적인 협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회의론이 워싱턴 정가에서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이러한 태도 변화가 동북아시아 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자국의 지정학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한다. 중국이 북한의 핵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오히려 북한의 핵 능력을 고도화할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시장 질서와 지역 안정을 중시하는 보수적 국제 질서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당사국의 합리적 우려를 강조하는 것이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전술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은 이제 비핵화보다 한반도의 안정적인 관리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 다수 외교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러한 기류는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의 자체 핵무장 여론을 자극하여 동북아 전반의 군비 경쟁을 촉발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향후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는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 심화와 중국의 태도 변화로 인해 더욱 험난한 과정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경제적 합의를 바탕으로 중국을 압박하려 하겠으나 중국은 주권과 안보 문제를 경제적 이익과 결부시키지 않겠다는 태도를 명확히 하고 있다. 결국 한반도 문제는 미중 패권 다툼의 종속 변수로 전락하며 장기적인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론적으로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양국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 조정에는 성공했을지언정 한반도 비핵화라는 근본적인 안보 과제에서는 간극만 확인한 자리가 되었다. 중국의 비핵화 지우기는 단순한 수사적 변화를 넘어 동북아 안보 질서의 판을 바꾸려는 장기 전략의 일환으로 판단된다. 정부는 중국의 이러한 정책 변화를 엄중히 인식하고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을 설득할 정교한 외교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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